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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_ 국내여행

혼자떠나는 부산여행 이중섭거리 전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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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댁은 아기때문에 멀리 나갈수 없어서 혼자서 부산을 다녀오라고 한다

양산까지 내려왔는데 부산을 다녀가지 않을 수 없기에

혼자서 어디를 가면 좋을까 검색을 하다가 덕선제과를 가봐야겠다 싶어서

근처에는 무엇이 있을까보니 호천마을이 검색되었다

양산증산역에서 타고 호천마을 주변역에 내려 버스로 갈아탔는데 내리는 곳을

놓쳐버리는 바람에 엉뚱한 곳에 하차를 하고 말았다

 

 

갈 곳을 놓쳤지만 마을자체가 사진찍기 좋아서 발길이 닿는대로 걷다보니

호천마을과 멀어지고 이중섭거리를 만나게 되었다

오홋!!! 이게 왠 횡재. 이중섭거리가 있는줄도 몰랐는데

 

 

희망길 100계단

이날 날씨가 너무 더워서 계단을 보니 숨이 턱!!

하지만 올라가지 않을 수 없는 이중섭의 작품들

천천히 올라가면서 꾸며놓은 작품들도 구경하고 멀리보이는 동네도 보고

 

 

 

이중섭은 1916년 평안남도 평원에서 태어났으며, 1937년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온 이듬해 원산사범학교에서 미술교사가 된다.

한국전쟁발발 후 1·4후퇴때 이중섭은 아내와 두아들을 데리고 부산으로 내려온다.

우암동 피란민 수용소에서 살며 부두 노동을 하던 그는 1951년 가족과 함께 제주도로 건너갔다. 그해 12월 다시 부산으로 돌아와 범일동 귀환 동포마을 변전소근처에 판잣집을 짓고 생활했다.

극심한 생활고 때문에 이중섭과 마사코는 이별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1952년 마사코는 영양실조에 걸린 아들을 데리고 친정이있는 일본으로 돌아간다.

이중섭은 가족을 떠나보낸 후 홀로 부산에 남아 낮에는 부두 노동자로 일하고 밤에는 술로 외로움을 달랬다.

그러나 그림에 대한 열정만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는 광복동 일원의 밀다원, 금강다방, 그리고 부둣가의 술집들을 전전하며 부산으로 피란온 예술가들과 친밀한 교분을 나눴다. 비록 담뱃갑 은박지에 그림을 그리며 끼니를 해결하는 가난한 화가 신세였지만 이 곳에서〈범일동풍경〉이라는 명작을 탄생시킨다.

범일동 553번길주변에 조성된 이중섭거리에는 그의 고단했던 삶과 치열했던 예술 세계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희망 100계단 끝 이중섭전망대에 이르면 당시 이중섭이 아내 마사코에게 보낸 절절한 편지를 읽을 수 있다.

동구문화관광 홈페이지 참조

 

 

내가 아는 작품이라고는 황소뿐이였지만

잘 알지는 못해도 이중섭의 그림체는 익히 알고 있으니..

 

 

아내를 위해 썼던 편지중 일부도 계단에 꾸며져있었고

 

 

너무 덥고 마스크때문에 숨이 더 헐떡헐떡

힘이 들어서 중간에 잠깐 쉬려고 앉았는데 어르신들이

사진을 많이 찍으라고 하신다 ㅎㅎ

 

호천마을은 어디에요? 라고 어쭤보니 잘 모른다고 하시더니

한분께서 아! 하시더니 송가인이 다녀갔던 곳 아니야?? 하면서

트로트가수 이름으로 지명을 기억하셨다 ㅎㅎ

한때 트로트가 대단하기는 했지~

 

 

계단을 다 오르니 이중섭전망대가 보인다

혹 차를 가져오시는 분들은 이중섭전망대를 검색해서 오시다가

여기에 차를 잠깐 세우고 둘러봐야할 듯 싶어요

근처에 주차장은 못봤어요

 

 

카메라 렌즈를 땡겨서 보니 저 멀리 호천문화플랫폼도 보여

쉼은 잠시 또 다시 걷기 시작~

 

 

길을 걷다보니 정겹다

길을 잃기 잘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면서 덥고 힘들지만

좋은 풍경 잘 보고 또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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